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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팔색조'라는 별명만큼 선수의 특징을 잘 표현한 닉네임이 또 있을까. 조계현(1964년생)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통산 126승 92패,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하며 해태 타이거즈 황금기를 책임진 투수였다. 군산상고 시절 혹사로 강속구를 잃었지만, 오히려 그 위기를 기회로 바꿔 다양한 구종을 장착한 기술파 투수로 거듭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해태에서의 화려한 날들과 더불어, 두산 베어스에서도 우승의 기쁨을 맛본 그의 야구 인생은 '투혼'과 '재기'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해태 황금기를 이끈 1선 발의 탄생
1989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조계현은 처음엔 구위 하락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첫 시즌 174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 관록의 선동열, 이강철과 함께 선발 3인방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1991년까지 선발투수로 활약하던 그는 1992년 선동열의 부상 이탈 시 마무리까지 겸업하며 10승 6패 12세이브를 기록하는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진정한 전성기는 1993년부터 시작됐다. 1993년과 1994년 연속으로 최다 선발승(17승, 18승)을 차지하며 해태의 1 선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비록 다른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해 2년 연속 정규시즌 MVP는 놓쳤지만, 다양한 변화구와 특유의 배짱으로 무장한 그의 투구는 '싸움닭', '승부사'라는 별명을 얻기에 충분했다.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현대와의 치열한 접전에서 2승 2패 상황의 5차전 선발로 나서 정민태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해태의 8번째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해태 시절 통산 320경기 등판에 126승 92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3.17이라는 화려한 기록은 그가 팀의 진정한 에이스였음을 증명한다.
삼성 이적과 시련의 시간
1997년 조계현은 현금 4억원에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됐다.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의 패배를 투수력 열세로 분석하고, 경험 많은 조계현을 영입해 투수진을 보강하려 했다. 하지만 1998년 삼성에서의 첫 시즌, 150⅓이닝을 소화했음에도 평균자책점이 5점대에 머물렀고, 1999년에는 8승 11패, 평균자책점 5.21로 더욱 부진했다. 만 33세라는 나이에 찾아온 노쇠화는 생각보다 빨랐고, 삼성은 큰 기대를 걸었던 그를 2000년 시즌 후 방출했다.
두산에서 피운 마지막 영광
방출의 아픔을 겪은 조계현에게 두산 베어스가 손을 내밀었다. 2001년 시즌 정규리그 3위로 시작한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통과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때 조계현의 역할은 컸다.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4차전 선발로 나서 6-0 완승을 이끌며 36세 6개월의 나이로 한국시리즈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세웠고, 통산 한국시리즈 5승째를 올리며 큰 경기에 강한 투혼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당시 절대강자로 평가받던 정규시즌 1위 삼성 라이온즈를 4승 2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두산 투수진은 10승 투수가 한 명도 없는 최약체로 평가받았지만, 조계현을 비롯한 베테랑 투수들의 경험과 투혼이 빛을 발한 시리즈였다. 이는 '미라클 두산'의 신화를 완성하는 순간이었고, 조계현은 두산에서도 우승 반지를 획득하며 화려한 선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팔색조의 진정한 의미
조계현의 '팔색조'라는 별명은 단순히 여러 구종을 던진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군산상고 시절 혹사로 강속구를 잃은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변화구를 익혀 정상급 투수로 재탄생했다는 점,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 그리고 해태, 삼성, 두산을 거치며 세 팀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어디서든 프로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팔색조'였다. 8 시즌 연속 규정이닝을 채운 꾸준함과 LG를 상대로 9회초 2사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집중력은 그의 프로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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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현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투수이자, 역경을 딛고 일어선 재기의 아이콘이다. 해태 타이거즈 황금기의 주역으로서 여러 차례 우승에 기여했고, 삼성에서의 시련을 겪은 후에도 두산에서 다시 한번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통산 126승이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마운드 위에서 보여준 투혼과 승부사 정신이다. 강속구를 잃고도 기술과 경험으로 정상에 올랐던 조계현의 야구 인생은, 지금도 많은 야구팬들의 가슴속에 '팔색조'라는 이름으로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영리하고 집요했던 투수 중 한 명으로, 영원히 레전드로 남을 것이다.